[140] [말하지 않고 말하기] 소통의 본질

#한줄요약 : 소통의 본질은 함께하는 것이다.
#벤치마킹 : 비난하지 않기(비난 1번 하면, 칭찬 5번 해주기)
소통에 관한 책이다.
제목을 본 우리 아이는 '어떻게 말하지 않고 말을 해요?' 라고 물었다.
소통에는 직접적인 언어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비언어적인 것들도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작가가 제시하는 소통의 방식은 터치, 눈맞춤, 정서 조율,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 까지 6가지이다.
그런데 책을 읽을 수록 비언어적인 소통이 아니라, 소통의 전반을 다루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 소통인가?
결국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본질은 함께 하는 것이다.
작가가 제안한 6가지 방법은 사실 한가지가 아닐까? 결국 상호간의 정서 조율이 아닌가 싶다.
P.11
인간의 소통은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조율과 감각의 교차편집과 같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말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AI에게는 인간이 수만 년동안 같이 느끼고, 함께 형성해 온 비언어적 소통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잃어버린 '소통의 원형', 말하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던 그 상호작용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것입니다.
#소통은 사실 말이 아니라 조율이다.
P.34
아기를 안고 있을 때, 엄마는 아기의 등을 쉬지 않고 가볍게 토닥입니다. 이 행동은 '안심해. 지금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어'라는 의미라고 모리스는 주장합니다. 이 동작은 아기를 안고 있지 않을 때도 지속됩니다. 엄마의 손이 닿는 범위에 아기가 있으면, 엄마는 아기를 어떻게든 두드려 주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초보 엄마, 아빠 시절을 생각해보면 좌충우돌 하지만, 아이도 부모도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때 아이는 잘 크고 있었고 부모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고민이 되면 자연스러운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자
P. 57
방향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소통하며 미래를 계획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전속력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래서 '함께 마시는 것'보다는 빨리 취해서 이 무의미한 모임을 끝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축복 받은 세대라고 하지만 그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개인의 희생이 당연했던 시절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우리는 서로간의 이해를 통해 극복해야한다.
P.80
상호작용적 '눈맞춤'이 통제의 '시선'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진화한 '시선'은 오늘날의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 됩니다. 현대 인간 행동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인 '부끄러움'과 '수치'의 탄생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은 그저 피해야 할 감정만은 아니다.
#다소 불편해도 문명화된 삶을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부끄러움'이다.
P.90
원시적 분노와 적개심의 표출은 더 이상 부끄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그 결과 이제까지 공동체를 유지해왔던 상호작용의 원칙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사회적 신뢰도 붕괴됩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자기통제의 붕괴, 상호 존중의 약화 같은 현상을 학자들은 '탈문명화'로 설명합니다.
P.92
이제는 시선의 통제가 불가능한 네트워크상의 행동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됩니다.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분노와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네트워크의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현상은 곧 발생할 전 세계적인 반문명화 과정의 전조입니다.
#진정한 문제는 익명성이 아니었다.
#익명성에서 기인한 사회의 변화가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뻔뻔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를 인식했으니, 또 다시 서서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해결하려면 질타보다는 존중하고 의견을 서로 들어줘야 한다.
P.118
인간의 부정적 감정은 긍정적 감정보다 더 강한 반응을 유발하고, 더 오래 지속됩니다. 부정적 감정 어휘가 긍정적 감정 어휘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정교합니다.
#이게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라면, 이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은 억누를 필요가 있겠다.
P.151
생각은 그림으로 날아갈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비선형적인 시각적 사고는 생각의 한계를 자꾸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문장적 사고는 그러다 벌어진 일을 설명하고, 검증하려 합니다. 정당화도 하지요. 한마디로 시각적 사고는 사고를 치고, 문장적 사고는 뒷수습을 합니다! 창조는 시각적 사고가 합니다.
#현대의 사회는 시각적인 정보가 굉장히 많다.
#어쩌면 앞으로의 사람들은 보다 창의적일수도 있겠다.
#물론 이를 잘 활용하려면? 문장적 사고가 따라줘야 하지 않을까?
P.174
앞서 거울 뉴런을 설명하며 아기의 선천적인 모방 능력을 설명했듯이,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적극적으로 엄마와의 상호작용에 참여합니다. 엄마가 반응을 멈추자 아기는 능동적으로 상호작용을 변화시키려 애씁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마도 아기의 행동을 흉내 낸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상호작용을 통해 삶을 살아가고, 만들어 간다.
#결국 생각하는 대로 선택하고, 그게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의 선택이다.
#목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
P.178
AI가 인간을 협박하고 추방하려면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AI가 자의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의식'은 유한한 존재의 특징이자 특권입니다. 인간의 자아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시간적으로 유한한 몸에 내가 위치한다는 인식입니다. 즉 '시간적 결핍'을 자각하는 의식'입니다. 그래서 '생존 본능'과 '종족 번식의 본능'을 갖게 됩니다.
#나의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나를 구분하고 목적을 갖는다는 것
#처음 접해보는 시각이지만,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느끼는 결핍이 세상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닌가?
P.223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대화는 두 사람 모두의 책임입니다. 과묵한 사람은 자신의 순서가 와도 전혀 책임지지 않습니다. 아주 이기적입니다.
#과묵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과묵을 피하기 위해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적당한 반응을 해주는 것 만으로도 과묵은 아니지 않을까
P.226
민주주의란 공간의 평등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에게 '차례'를 내주는 '순서 바꾸기'의 기술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이 상호작용의 규칙이 무너져 내리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꼼짝없이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과정의 평등, 기회의 평등은 필요하다.
#다만 삶은 이어지기에 부모의 결과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와 별개인 과정과 기회에서는 엄격하게 평등함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게 결과의 평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는 개인의 선택이다. 선택이 모두 같을 수 없기에 결과도 같을 수 없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대가를 치러라.
#박탈감에 빠질 시간에 결과를 존중하고 하나라도 더 행동하자.
#쉽지 않다. 오죽하면 대중과 반대로 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P.261
언어는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고, 그 시선이 향하는 대상을 함께 바라보며, 서로의 의도를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함께하는 과정이다.
P.275
언어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공동의 계획을 조율하는 수단이 됩니다. 토마셀로는 언어가 있어서 협력한 것이 아니라, 협력하려는 공동의 의도 때문에 언어가 필요했다고 주장합니다.
#함께하는 의지는 굉장히 강력하다. 어쩌면 서로의 의지를 빌려주는 걸지도?
#그 의지의 표현이 언어인 것
#따라서 언어가 달라서 실패했다는 바벨탑은, 사실 의지가 없었던게 아닐까?
P.277
그러나 언어가 단순히 텍스트 데이터의 확률 분포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경험에서 나와야 한다는 맥닐의 주장은 인공지능의 언어가 가지는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언어는 물리적 경험에 기반하기에 인공지능의 언어는 진짜 언어가 아니다.
#언어는 경험에 기반한다. 그래서 공간에서의 경험이 언어에도 묻어나온다.
#경험이 없는 말은 공허하다.
#블로그의 글도 나의 경험을 녹이면 더 강력한 포스팅이 되는 듯
#다만 경험이 전부는 아니다.
#오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래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항상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변화를 체크하는 게 오래하는 것의 또 다른 축이다.
P.319
디지털 사회는 '나를 규정해주던 관계 장치'를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관계는 언제든 종료할 수 있고, 그 관계마저 대부분 SNS를 통해 비대면으로 이뤄집니다. 사회적 역할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갈수록 문제가 더 생기는 것인지,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회 문제도 같이 발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소식이 빨라진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디지털 사회는 다른 형태인 것은 맞고, 기존에 함께하는 연결고리가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P.333
관점 바꾸기는 상대를 용서하라는 감상적인 윤리가 아닙니다. 나를 '피해자'라는 좁은 감옥에 가둔 자기 연민의 사슬을 끊고 나오는 용기입니다. 타인의 관점으로 이동해 봄으로써 나의 억울함을 객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도덕적으로 옳은 피해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 시대 이후로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 아이덴티티로 고민하는 한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입니다.
#메타인지는 나라는 관점에서만 머물면 안된다.
#타인의 관점에서 나를 객관화 하려면 타인 또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억울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덕성이 무너졌다고 간단하게 생각하지 말자.
#본질을 파악하려면, 공감하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P.362
마지막으로 '토론'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활동입니다. '상호 가르치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해석을 접하게 되면 자신의 이해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책을 더럽게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혼자 읽는 것에서 상호간의 의견을 나누게 되면, 곱하기로 책을 읽는 방법이 아닐까?
#해당 책을 읽으면서도 꽤나 어렵고 난해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다른 분들의 의견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P.368
한국의 문제는 리더들이 너무 바쁩니다. 그리고 그 바쁨을 '성공'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다같이 정신없이 바쁠 것을 강요합니다. '바쁜 성공' 틀렸습니다. '바쁜 행복'은 없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행복은 느린겁
니다!
#행복은 강도보다는 빈도다.
#그렇다고 성취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성취하는 '나'와 행복으로 에너지를 채워주는 '나'를 구분하는 것도 방법이다.
P.388
주체적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원근법의 견고함'처럼 세상이 아무리 왜곡된 정보를 던지더라도 이를 스스로 보정해내는 심리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다. 왜곡된 정보 또한 너무나 많다.
#자기만의 기준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대가가 분명 필요하다.
#어렵지만 꼭 해야하는 것이다.
#소통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