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행복의 기원] 일단 '생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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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분명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모습도 아니고, 그 역할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의식만이 우리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생각이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항상 좌우한다고 착각한다.]
이성적 사고는 중요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분명 이성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답기 위해서 이성적 사고를 하려면 일단 '생존'해야 한다.
'생존'이 당장 눈 앞에 놓인 큰 문제라면 나의 모든 것들이 '생존'을 1순위로 두고 움직일 것이다.
인류가 존재해온 대부분의 시간동안 '생존'은 1순위였고, 우리의 신체는 그렇게 세팅이 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특히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에게 기존의 '생존'은 더이상 걱정거리가 아니게 됐다.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생존'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적 사고와는 다르게 신체는 반응한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 괴리가 있는 것이다.
마치 당장 아파트가 필요한데, 공급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과 비슷할까?
[많은 보헤미안들이 영적인 관심을 삶의 전면에 내세우는 데 몰두한 나머지 실제적인 문제를 태만히 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생존할 만한 일을 찾는 데 안간힘을 써야 했으며, 이렇게 되자 영을 생각할 시간은 줄어들고 몸 생각을 해야 하는 시간은 늘어났다._불안 P.352]
하지만 '생존'의 방식이 바뀌었다고 봐야하는 게 아닐까?
예전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당장 '사냥'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돈'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부자들 또한 '돈'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만 '돈'으로 불행을 막을 수는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삶에서 각자 다양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살아야 하고, 그 안에서 실제적인 문제를 외면하면 그 다음은 없는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류의 삶에 기본으로 깔리는 것은 '생존'이라는 것은 모양만 바꼈지 똑같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