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시대예보] 누가 고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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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큰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선 반드시 지원 부서의 역할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를 위한 보고, 관리를 위한 관리가 늘어나고, 중간 조율과 소통이라는 명목하에 업의 본질이 아닌 사내 정치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게 된 관리자의 역할이 진짜 수고인지는 냉철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모든 업무에는 분명 고객이 존재한다.
다만, 업무의 수행주체가 조직이 되면 업무에 조금씩 변질이 생긴다.
조직사회에는 실무자와 관리자가 있다.
큰 조직일 수록 관리자 위에는 또 다른 관리자가 존재하고, 무언가 결과물이 배포될 때에는 이들의 결재를 거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본질적인 업무의 목적에 추가된 또 다른 의도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게 과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얼마전 KBS에서 한글날 특집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일상의 간판뿐만 아니라 공공문서에도 공공연하게 나오는 외국어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실 평소에 외국어 간판에 별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읽기 힘든 단어들의 조합이 종종 눈에 띈다.
일반적인 음식점이야 그럴 수 있다.
문제는 에너지바우처, 환경옴부즈맨, 데이케어센터 처럼 정책의 대상자들은 알아볼 수도 없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화를 통해 안내를 받아도, 심지어 대면으로 안내를 받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고,
어려운 단어 때문에 제도 자체를 까먹게 되니 제대로 된 정책이 실행 될 수도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1979년 영국에서는 쉬운 영어쓰기 운동이 시작됐다.
운동의 발단은 1970년대 공문서의 어려운 용어 때문에 난방비 보조금을 받으려던 노인이 숨진 사건이었다.
이슈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왜 생겼을까?
정책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서 예산을 아끼려고 했기 때문일까?
업무 담당자가 있어 보이려고 어려운 단어를 썼기 때문일까?
이런 상황은 결국 업무의 실질적 고객의 만족은 뒤로 한채
관리자 혹은 그 상위의 관리자를 만족하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업무를 하는 것인가?
업무의 목적에 부합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업무를 쳐내기 위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일상에서도 목적이 선명하지 않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나의 행동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지 주기적으로 리마인드할 필요가 있다.